이어령의 소설이 원작으로 사회에 부적응한 고독한 남자의 파멸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김철훈은 ‘삶의 현장에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존재로 자신을 묘사한다. 즉 자신이 카메라 렌즈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고독한 성향은 유년기에 형성된 것으로, 상놈과 놀지 말라고 다그치던 몰락한 지주 아버지의 호령에 기인한다. 김철훈은 또래 아이들과 맘껏 놀아본 기억이 없이 외롭게 자란 것이다. 이는 김철훈에게 세상과 일정한 거리감을 형성케 하였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그는 ‘장군의 수염’으로 상징되는 획일화된 근대 사회를 조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철훈의 고독한 실존은 그 스스로를 상상 속으로 퇴행시키고, 결국엔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 김철훈의 파멸을 통해 관객들은 이 영화가 당대 현실에 대해 잿빛 시선을 품고 있었음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