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본편이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난 30분에 이르러서야 크레딧이 나온다. ‘러브스토리’라는 익숙한 제목을 달아놓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익숙한 러브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마치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는 꿈속에서 헤매는 듯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애매하게 흐리며 영화는 작가의 욕망과 결핍을 홀린 듯이 따라가려 애쓴다. 주인공 소설가는 그가 겪은 여자들과의 관계를 소재로 글을 쓰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다. 그는 완벽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 아니고 그의 욕망에 투사된 여자들과의 관계도 과격하게 깨어질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비평가 출신의 감독 켈빈 통은 영화 언어에 대해 적극적인 자의식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소설을 쓰는 주인공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서, 동시에 관객이 어떤 심정을 갖게 되는지 질문하는 형식을 취한다. 전형적인 아트하우스용 영화라고 하겠지만 이 실험의 흐름에 일단 몸이 적응하기 시작하면 뜻밖에 솔솔 흥미가 생겨난다. 결국 자명하지 않은 욕망의 실체라는 것에 대해 역시 자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영화의 꼴에 대해 이런 저런 상념에 젖게 되는 것이다 (2006년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