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미스터리처럼 출발한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뻔한 일상을 반복하던 덱스터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젊은 여성이 애인 스텔라처럼 보이는가 하면 아버지와 사장이, 어머니와 간호사가, 직장 동료와 치료사가 동일인물로 겹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 교통범칙금 고지서는 연이어 날아오고 스텔라는 그런 덱스터를 이해하지 못한다. 탄 감독은 우뇌 손상으로 왼쪽 인지기능을 상실하고 현실 인식에 문제가 생긴 주인공의 상태를 통해 비운의 스토리가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세상 바라보기, 혹은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자아 찾기를 제안하는 듯하다. 하지만 다중 프레임이 지배하는 영 화의 반복적인 미장센을 통해 암시되는 인생관은 비관주의와 낙관주의 양쪽에 걸쳐있다. 도입부와 종결부에 다소 다른 설정으로 등장하는 쳇바퀴 속 햄스터가 이런 양면성에 대한 힌트로서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