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놀라운 기적은 폐허의 땅에서도 어떻게든 삶을 일구고 버티려는 사람들과 대자연에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을 담담히 목격하며 멀리 있는 이국의 어머니께 비로소 다정한 안부를 전하는 이는 네팔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청년 파미르다.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화마가 휩쓸고 간 강원도 고성에서 불타버린 집들을 수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곳의 지난 시간을 가늠해본다. 파미르가 묵고 있는 하숙집 주인 부부 역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산불로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인흥리 37-1〉은 2019년 발생한 고성 산불을 모티프로 한국 영화가 관심 밖 영역으로 뒀던 강원도 고성의 삶을 주목한다. 재건을 함께하는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파미르처럼 학업과 일자리를 위해 타지로 온 네팔 청년들, 2015년 네팔 대지진을 겪은 만큼 재앙 이후의 시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비애, 오랫동안 정 붙이고 산 공간이 사라졌다는 허무를 이해하는 데는 국적과 처지의 차이보다 사람을 향한 인정과 이해가 앞서 있다. (2021년 제9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정지혜)